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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설화(錦載屑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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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단상

마음의 障碍人들

산수호학(山叟好學) 2009. 2. 4. 11:06

마음의 障碍人들

"당신은 지난 19일부터 시드니에서 열렸던 제11회 파랄림픽이 언제 끝났는 줄이나 아십니까? 121개 나라에서 3900명의 선수들이 참석했던 이번 대회는 사상최대로 성대한 것이었으며 88년 서울대회 때의 2배 규모인데다 금메달수도 550개였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여기서 내가 말하는 `당신`이란 특히 평소에 그처럼이나 지체부자유인들을 위하는 정치를 펴겠다던 정부관계자들, 상품광고라면 돈을 물쓰듯 하는 대기업들, 여름 올림픽 때에는 취재와 방송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던 신문과 방송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파랄림픽은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신체장애인들을 동정하기 위해 마련하는 자리가 아니다. 신체장애인들끼리 놀이의 잔치도 아니다. 
개회식때 한 선수는 휠체어에 탄 채 강렬한 트위스트 춤을 추었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던 또 다른 선수는 물구나무서기의 묘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휠체어의 마이클 조던`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농구팀 주장인 트로이 삭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얼마나 강력하고 정열적인가를 보여줌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인식은 달라진다."

이번 대회의 참가자들은 모두가 온갖 사회적 편견과 인생의 좌절을 용기와 의지와 웃음으로 이겨나간 `생존자`들이다. 아니 인생의 금메달리스트들이다.
개회식 때 맹도견(盲導犬)에 이끌려 선수 선서의 무대에 오른 호주의 크로스 수영선수는 자기가 바르셀로나와 애틀랜타 두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기까지의 힘겨운 훈련을 재탱해준 것은 `자존심`이었다고 말했다.
육상 남자 100m에서 `의족(의족)의 모리스 그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미국의 마론 샤리는 11초 09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여자 육상 800m에서 은메달을 딴 일본선수는 음주운전자의 자동차에 치여 반신불구가 된 가정주부이다. 같은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스위스의 여자선수는 작년 1월에 폐암수술을 받은 환자이다. 의족을 낀 르완다의 수영선수는 지뢰를 밟아서 한쪽 다리가 절단되었다.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일본선수는 선천적인 시신경이상자였다.

그들은 남이 아니다. 우리도 언제 전쟁으로, 질병으로, 또는 사고로 그들과 같아질 수 있는 것이다. 

애틀랜타대회 때 두 개의 금메달을 따고 200m 메들리에서 은메달을 딴 일본선수는 중학 3년 때부터 실명한 중학교 교사이다. 당뇨병을 앓다 실명한 39세의 미국여성은 눈이 보이는 사람과 짝지어 달리는 1000m 2인승 자전거경주에서 우승을 했다. 그녀는 표창식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덕택에 오늘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장애가 있어도 세계기록을 냈다는 경험은 나에게 큰 자신을 안겨 주었다." 

이 모든 사실을 나에게 알려준 것은 다른 나라 신문과 텔레비전이었다. 
지난 20일자 일본신문은 `한국, 아베크 `금` ` 이라는 제목으로 휠체어에 탄 한국의 김임연 선수의 사진을 곁들여 한국의 사격선수가 금메달을 땄다고 대서특필했다. 이 기사는 그녀를 관전하고 있던 일본선수진 속에서 `10년 걸려도 깨지 못할 기록`이라는 탄식이 터져나왔다는 뒷얘기까지 싣고 있었다. 그 신문은 또 아무 후원자도 없이 순전히 자비로 연습을 해온 정진원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까지에는 올림픽 사격 대표선수인 이은철씨 한 개인의 힘이 컸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이런 사실을 내게 알려준 것은 우리나라 신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남의 불행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할 줄 모르는 `마음의 장애인`들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도 파랄림픽에 대해 무관심할 수가 없다. <자료:조선일보, 홍사중 문화마당,2000.10.31>


며칠전 TV에서 치매에 걸린 모친을 두고 세 아들과 세 며느리가 서로 모시지 않을려고 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정말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사람 몸 받아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다 주고 남은 것은 지친 몸과 치매, 오갈 데 없는 빈털털이의 처량한 신세...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부처님을 믿는 신자들이라면, 열성적으로 교회에도 가고 절도 찾을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절도 할 것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은 귀찮고 더럽고 불편하니까 서로 모시지 않을려고 이 핑계 저 핑계 다되면서 말이다.

착한 마음, 선한 마음(good heart) 닦는 길은 교회도 절도 아닌 제 부모공양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치매노인 돌보는 것은 바로 제 마음 닦는 최상의 공덕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TV에서 큰 아들, 큰 며느리, 둘째 아들, 둘째 며느리는 마음의 지체부자유인들이었다. 
지금은 환경오염, 전자파 등의 피해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체적 지체부자유인들보다 마음이 비뚤어지고 굴곡된 정신적 지체부자유인들이 이 세상엔 더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나재철닷컴-
http://www.najaech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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