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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설화(錦載屑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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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산수호학(山叟好學) 2015. 4. 6. 20:49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초기부터 15세기까지의 양천제(양인과 천인의 두 계급)가 16세기 부터 반상제로 바뀌어 지배계층(양반), 중간계층(중인), 일반 피지배계층(농민), 최하층(노비) 등 4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진다.

18세기 후반부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정조에 의해서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된 초정 박제가, 형암 이덕무, 영재 유득공 등이 대표적인 서얼(庶孼, 서자와 얼자)출신으로 중인이었다.​ 이들은 본부인이 낳은 양반 적자(嫡子)들의 강력한 라이벌이었지만, 첩이 낳은 서자출신이라는 이유로 신분적 제약이라는 가슴 속 울분과 사회적인 차별대우는 물론 공평하게 승진할 수 있는 기회도 제대로 붙잡을 수 없었다.
그나마 홍재(弘齋)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뜻을 품고 ​살았던 정조 이성이 군사(君師)를 자처하면서 나라의 실리와 조화를 도모하며 학문과 현실의 융화를 꾀하려 했던 의지의 한 단면으로 재위 기간에 30여 명의 서자 출신이 관료로 임용되었을 뿐, 서얼 출신은 관직에 나가는데 일정한 제한을 두었던 제도, 즉 서얼금고(庶孼禁錮)라는 가혹한 규정으로 인해 조선시대의 서얼 출신의 인재들은 자신의 재능을 썩힐 수 밖에 없었다.
   "葵史(규사)" 는 1858년(철종 9)에 조광조와 이이를 추앙하는 유림단체인 대구의 달서정사에서 역대의 서얼에 관계되는 그들의 글과 일화들을 모아서 펴낸 2권 2책이다. 책이름의 葵는 해바라기란 뜻으로 "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는 것은 본가지든 곁가지든 가리지 않고, 신하가 충성을 다하는 것이 어찌 적자여야만 하겠는가? "는 선조의 비답(批答)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반쪽 양반인 서얼들을 그림자 속에서도 빛을 바라고 쳐다보는 해바라기의 특징을 빗대어 '해바라기의 역사'로 묘사한 것이 재미있다.
   국화과의 한해살이 풀로서 작은 꽃잎이 모여 하나의 꽃을 피우는 두상화인 해바라기(sunflower)를 생각하면,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뜨겁고 격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으로 그의 짧고 비극적인 삶과 예술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는 '노란색 해바라기'(1888년 작품, 캔버스 유채) 그림과 제2차 세계대전이란 시대적 배경과 구소련이란 지리적 배경을 무대삼아 전쟁의 소용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했던 남녀(지오반나와 안토니오)의 비극적 순애보를 다룬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감독의 1970년 작품,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주연의 '해바라기(I Girasoli, Sunflower)'라는 영화가 가장 먼저 뜨오른다.
   가장 최근엔 "뼈 건강(bone health)에 이로운 비타민 D(일명 sunshine vitamin으로 불림) 결핍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간 해바라기'가 되는 것이다." 라는 중앙선데이의 기사 내용​(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2015. 4. 5)을 인터넷으로 접하면서 야외에서의 일정 시간 동안의 '해볕 쬐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인간 해바라기'라는 단어가 신분이라는 벽 때문에 관리의 업무 보조, 기술 담당, 실무행정의 종사 등 제한적 범위 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밖에 없었던 조선 시대의 서얼들과 겹쳐 보여 기분이 묘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의미와 표상으로서 서얼이라는 잔재가 남아있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 특히, 국가 백년대계라는 교육 정책을 지향하는 일선 공사립학교에서 교육수요자의 바람직한 학습과 참된 교육을 위해서 채용된 구성원들(교사, 일반 행정직, 교무행정원, 과학실험원, 상담사, 영양교사, 조리사, 지킴이 선생, 청소하시는 분 등등...)은 자신들의 신분과 직책 및 직무를 알고 성실히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과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혹은 정규직과 비정규직)로 구분짓고 명기하여 은근히 차별하고 있는 낌새가 보이고 냄새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내에서 교원과 일반 행정직은 자신의 입으로 '내가 공무원이다' 라고 자랑하지 않아도 해당 교육청과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과 교직원의 지원을 위한 필요성에 의해서 채용된 인력들(무기계약직 및 계약직 직원)은 인지하고 존중하는 자세와 태도로 맡은 바 직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데도, 굳이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라는 주홍글씨라는 딱지를 붙여 교육현장에서의 상대적 박탈감과 위축, 의욕상실과 허무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양반이 양반이기 이전에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듯이,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앞서 인간다움(仁), 즉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심미적 감수성을 지닌 참다운 중용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감, 장학관, 장학사, 교육행정직 공무원, 교원들은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앞서 여러분이 먼저 참된 인성과 사회성을 쌓는데 노력하고 교육수요자들로부터 모니터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솔선수범하여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교원임용고사, 사법고시, 공무원채용시험 등등... 을 시행하고 합격자를 선발하기에 앞서 해당 분야 및 직무수행에 대한 인적성검사라는 검증 절차를 거친 후 시험을 통해서 선발하는 것이 상식 중 상식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마치 해당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국내외에 전공학술논문을 다수 게재했으며, 채용 대학의 PPT와 면접을 통과했어 교수로 임용했지만, 그 교수가 인격이 훌륭하고 인성과 사회성이 탁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쭉정이도 채로 걸러 알맹이를 가려내는데, 왜 가슴과 마음씀씀이를 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방치한 채 달달 외운 머리만 볼려고 하는가?

   조선시대처럼 교육 계급이 있다 착각하고 ​행정문서에 '공무원과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로 문자로 장난치는 썩은 정신과 갑질아닌 갑질을 개조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무상급식, 무상급여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가슴에 각인시켜야 할 것이다.
   지금 이 땅에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가 되고 싶고 희망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저마다에게 주어진 삶을 살면서 그 때 처한 각자의 처지와 상황으로  인해서 지금의 일을 하고 있을뿐이지, 이들이 교육 및 학교행정직 공무원처럼 같은 철밥통을 함께 나눠 먹지 않거나 혹은 교원과 공무원 자격이 없다는 한 하나의 이유만으로 '홍익인간의 이념'을 지향하는 학교집단에서 인권적, 언어적 차별성과 상실감을 조장해서야 되겠는가?  수행하는 직무나 인격에 있어서는 교원이나 행정적 공무원보다 오히려 탁월한 센스와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라는 작금의 시대에 책상 앞에서 "정신적 서얼"을 만들고 그러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이들의 두개골 속에서는 윗선만 바라보는 태양의 꽃, 황금의 꽃이 피어나고 있나, 아니면 사쿠라인가?

   교육감을, 장학관을, 행정실장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그리움으로 숭배하는 해바라기가 되지 말고, 학교구성원과 교육수요자 '당신만 바라봅니다' 란 정신을 가진 참 해바라기가 되길 바란다.  그러한 해바라기야 말로 향원익청(香遠益淸), 즉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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