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재단상

집은 조금 작아도 된다

산수호학(山叟好學) 2013. 11. 2. 09:43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구름동네"는 해발 300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보두산, 낙화산, 석이바위 그리고 중산이 마을을 병풍 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고, 남과 서의 주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우로 세 개의 봉우리를 이루는 산들이 펼쳐져 있으며, 우백호와 3정승 사이에 태자봉이 서 있다. 상동면에서 흘러내려와 태극모양으로 만나는 밀양강과 신대구부산간 고속도로 그리고 저 멀리 진달래로 유명한 종남산이 보인다. 일설에 의하면, 고려무신 정권 때인 1193년에 청도 김사미와 밀양 효심의 난 당시에 발원지였다는 말도 있고,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지명 표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름동네 안에 아주 큰  공원같은 소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어 나는 편의상 숲 아래와 위 동네로 호칭한다. 조상 때부터 터를 닦아 대대로 살아온 현지인들보다 이제는 외지인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모양세이고, 이런 저런 모습의 새 집들이 꾀 많이 들어서고 있다. 내가 4년 전에 이 동네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숲 위 동네에 집(로사의 구름정원)을 짓고 이사올 당시만 해도 외지인의 집은 가뭄에 콩보듯 뜸 했는데, 이제는 건축붐이 불었다 하면 좀 과장된 표현이 되겠으나 눈에 제법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내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외지인들의 집들이 너무 크고 넓게 보이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말 그대로 물 좋고 공기 맑은 청정한 자연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집이 건축주의 개성과 철학을 표현하는 것이라 하지만, 도시의 단독주택 마냥 철근 콘크리트 집을 짓고, 평수도 30-50평이나 된다. 가족은 부부 둘 뿐인 것 같으며, 내 처럼 늘 거주하는 것도 아니고 주말 혹은 가끔 와서 풀 뽑고 채소밭 가꾸면서 쉬었다 가면서도 말이다. 도시는 빌딩도 많고 다양한 디자인의 아름다운 주택이 많아서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 집을 지어도 타인의 눈에 확 들어오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지, 시골에 와서 집의 크기와 외형으로 자신은 돈이 많은 사람이고 그 돈을 자랑하기 위해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 처럼 보인다. 말이 전원주택이지 자기자신과 가족이 사는 마음의 집이 아니라 타인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집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 그 어리석음과 교만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50-60세 쯤에 시골에 들어와서 앞으로 100세를 산다 해도 4-50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고, 그들이 떠난 뒤에 도시에 생활터전을 마련한 자식들이 들어와서 살 집도 아닐 것인데, 땅에 그리고 집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어 뭘 하겠다는 말인지. 

 

여기서 잠시 다카무라 토모야(高村友也)의 <작은 집을 권하다, 오근영 옮김, 책읽는 수요일, 2013>를 소개하고자 한다.

산과 도시 사이에 위치한 좁은 땅에 일본 법률이 정한 주택 규모에 미달하는 세 평 남짓한 작은 집을 짓고, 최대한 적게 일하고 적게 쓰며 마음의 여유를 누리던 저자가 '스몰 하우스'라 불리는 집을 짓고 사는 미국 사람들을 취재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스몰하우스 운동에 있어 역사적인 전환점을 만든 인물인 제이 셰프(Jay Shafer)를 비롯하여 그레고리 존슨, 디 윌리엄스, 라마르 알렉산더, 데이비드 벨 그리고 다이애나 로렌스의 스몰하우스를 취재하면서 현대의 삶을 성찰하고, 스몰하우스야말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행복에 가장 가까운 주거 형태이자 삶의 방식임을 일깨운다. 스몰하우스는 경제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변화라고 다카무라 토모야는 힘주어 말한다.

 

'집이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모토를 가진 제이 셰프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내 평온한 생활을 유지해 줄 집을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러한 삶을 위해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 가능한 집을 원했던 건 아니었죠. 그렇다고 임대주택을 얻고 싶진 않았어요. 빌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색깔을 넣어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명실공히 내 집이 갖고 싶었습니다."(p.27)

 

경제의 좋고 나쁨을 떠나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 고령화, 가족의 변화와 독신 인구의 증가 등으로 인해서 큰 평수의 아파트와 단독주택은 앞으로 큰 짐이 될 것이고, 대신 20평 남짓의 작은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도시 주거형태의 대세가 될 것이다.

정부 통계의 평균 고령화지수를 몇 십배 능가하는 시골 역시 각 마을 마다 있는 경로당(요즘은 남 녀 따로 경로당이 생기는 형국이다)과 마을회관, 정자는 2-30년 후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것은 뻔하고, 빈 집도 속출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큰 집과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주위의 자연 세계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사는 어리석은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사는 집에서 하루의 저녁이 한가롭고 일년의 겨울이 편안하고 일생의 노년이 여유로운 삶을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