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금재설화(錦載屑話)

건강의 개념으로서 공동체적 삶 본문

산수호학/금재서재(寶南齋)

건강의 개념으로서 공동체적 삶

산수호학(山叟好學) 2014. 1. 15. 20:15

 

 

 

 

  <티핑 포인트>와 2초 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의미하는 <블링크>란 책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깊게 각인된 미국의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2008년 작 <아웃라이어, outliers>를 2009년 4월 24일에 구입해서 같은 달 28일에 일독한 적이 있었다. '상위 1%의 성공과 부의 비밀을 밝히는 저자의 탁월한 식견에 새삼 놀랐지만, 정작 이 책을 읽은 본인은 프롤로그 "로제토의 수수께끼"에 충격과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로제토 발포르토레(Roseto Valfortore)는 로마에서 동남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이탈리아 포자 지방의 아펜니노산맥 기슭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로, 로제토 농노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며 입에 겨우 풀칠할 만큼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1882년 1월부터 신세계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로제토 사람들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뱅고어로 몰려가게 되고, 그들은 고향에서와 마찬가지로 언덕을 오르내리는 좁다란 길 양쪽으로 함석 지붕을 얹은 이층집을 다닥다닥 짖고, 언덕의 중심부에는 '카르멜산의 성모'라고 이름붙인 교회를 건립하며, 그 교회를 중심으로 이어진 거리를 이탈리아 통일운동에 헌신한 영웅의 이름을 따 '가리발디路'라고 불렸다. 대부분의 거주자가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건너왔다는 것을 고려해 마을 이름을 "로제토"라고 지어 불렀다.

 

  오클라호마 대학 의대에서 소화기와 위장을 연구했던 의사 스튜어트 울프(Stewart Wolf)에 의해서 로제토 마을이 최초로 알려지게 된다. 1950년대 후반쯤 로제토에서 멀지 않은 펜실베이니아의 한 농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던 울프가 그곳 지역의료사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게 되고, 강연 후 함께 맥주를 한 잔하던 그 지역 의사로부터 깜짝 놀랄 얘기를 듣게 된다.

 

  '저는 이곳에서 17년간 일해오면서 그동안 숱한 환자를 돌봐왔는데, 이상하게도 로제토 지역에 사는 65세 미만 사람들 중에 심장마비 환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콜레스테롤 저하제와 심장병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이었고, 당시 미국에서는 심장마비(heart attact)가 65세 미만 남성의 사망원인 1위였기 때문에 위의 말을 들은 울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울프는 오클라호마 대학의 학생과 동료 연구진의 지원을 받고 나아가 같은 대학의 사회학자인 존 브룬(John Bruhn)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즉각 조사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는 엄청 충격적이었다. 로제토에서 55세 이하는 누구도 심장마비로 죽지 않았을 뿐더러 심장질환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65세 이상의 경우에도 로제토의 심장마비 사망률은 미국 전역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실은 로제토 사람들의 식습관, 운동습관이었다 ; 울프가 영양사와 함께 로제토 사람들의 식습관을 분석한 결과에서 그들이 칼로리의 40% 이상을 지방에서 섭취한다는 사실과 건강에 좋은 올리브유 대신 식용 돼지 기름으로 요리하고, 비스코티쿠키나 스낵의 일종인 타랄리같은 단것을 1년 내내 먹었으며, 그 마을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요가를 하거나 조깅을 하지도 않았다.

건강에 신경 써기는 커녕 오히려 담배를 뻑뻑 피워댔고 비만과 맞서 싸우느라 허덕이고 있었다.

 

  식생활과 운동 나아가 유전 및 지역(로제토와 비슷한 지역에 위치한 인근 뱅고어와 나자레스에 사는 주민들은 로제토에 비해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률이 세 배나 높았음)이 심장마비 사망률을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로제토 수수께끼의 해답을 풀 수 있는 비밀은 식생활, 운동, 유전, 지역이 아닌 '로제토 마을' 자체였음을 울프와 브룬은 발견하게 된다.

 

  이들 연구자들은 로제토 사람들이 서로를 방문하며,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잡담을 나누고, 뒤뜰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마을사람들끼리 서로 나눠먹고, 한 지붕 아래 3대가 모여 살고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로제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낸 언덕 위의 작은 세계 덕분에 건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수(longevity)가 어떤 유전자, 우리가 내리는 결정, 식습관, 운동 및 적절한 치료에 좌우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당시의 의료계 시각으로 보면, 스튜어트 울프의 보고(사람들이 거리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3대가 한 지붕 아래에 사는 로제토 마을 공동체가 곧 건강이라는 개념)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건강을 공동체(community)라는 개념과 더불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건강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스튜어트 울프의 발견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촌 지역 고령화 인구 증가 속도는 정부 통계를 뛰어 넘어도 엄청 초월한 상태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선 선거철 표를 의식하여 마을마다 경로당를 지어주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할아버지 전용 경로당, 할머니 전용 경로당까지 지어주는 형국이다. 따로 국밥처럼 별개로 분리시키지 말고, 로제토 마을 공동체처럼 함께 음식을 나누고 같이 식사하고, 서로 대화를 하며 일하고 놀 수 있는 문화생활공간을 만들고 유도하는 정책적 철학을 가진 위정자를 기대하는 바이다.

 

 

  " 로제토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제 수명을 다하고 늙어서 죽었습니다."   - 존 브룬

 

<출처> 말콤 글래드웰(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아웃라이어, 김영사, 2009, pp.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