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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설화(錦載屑話)

130권 52만 6500자 본문

산수호학/금재서재(寶南齋)

130권 52만 6500자

산수호학(山叟好學) 2013. 12. 20. 19:28

 

 

 

1. 사마천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 <사기>

 

  발분저술(發憤著述)의 위대한 정신의 표상인 사마천(기원전 145 - 기원전 90년 ?)의 사기(史紀)는 제왕의 역사로서 '시세'와 '대세'를 주도한 자의 기록인 본기(本紀) 12권, 사건 위주의 본기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배려한 표(表) 10권, 사기의 총론으로서 국가 제도와 문물에 관한 전문적인 논문이라 할 수 있는 서(書) 8권, 춘추전국이래 한대에 이르는 주요한 제후들의 역사기록이 담겨있는 세가(世家) 30권, 왕 제후 이외의 인물에 관한 기록으로 사마천의 역사의식과 시대의식을 엿볼 수 있는 열전(列傳) 70권 그리고 사기를 저술하게 된 경위와 129권의 취지, 개략적 내용을 소개함과 동시에 사마천 자신의 역경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한 기록인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역사서 체제를 기전체(紀傳體)라고 부른다.

 

2. <사기> 왜 읽어야 하는가?

  史紀 연구가이자 전문가인 김영수 박사는 <사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와 읽는 보람 14가지를 들고 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 무엇보다 재미있다 ; 특히 <사기> 130권 가운데 분량이 무려 반이 넘는 열전 70권의 재미가 특별하다.

두 번째, 진한 감동이 있다 ; 작은 이익에 흔들려 손바닥 뒤집듯 신의를 저버리는 오늘날의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신의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예양과 형가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현대인에게 잊고 지내던 어떤 기억과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세 번째, 세상사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될 때를 알게 해 주는 '진퇴의 지혜'가 있다. 인생 최고 절정기에 은퇴하여 명예롭게 삶을 마무리한 범려와 장량의 스토리는 인생을 살아갈 때 늘 놓이는 선택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돕는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해 준다.

네 번째,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아주 통렬한 비판이 있다 ; 이는 2,000여 년간 이어온 <사기>의 생명력이기도 하다. 권력자에 대한 찬양 대신 부당한 권력이나 부패에 대해 강렬한 저항과 울분을 터뜨린 이가 바로 태사공 사마천이었다.

다섯 번째, 능력과 재능은 있지만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 흔히 역사를 승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역사로 남긴 이가 바로 인간 사마천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휴머니스트였다.

여섯 번째, 참된 복수관이 들어 있다 ; 사마천은 부당하게 핍박받거나 희생당한 뒤 발분하여 통쾌하게 복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크게 평가했다. '은혜와 원수는 대를 물려 갚는다'는 중국 사람들의 은원관(恩怨觀)의 뿌리를 <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곱 번째, 다양한 인물을 만날 수 있다 ; <사기>를 넘기가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날 수 있다. 인간 군상의 만화경이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펼치는 생생한 언행이 마치 대하드라마처럼 다가온다. 때문에 독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처지에 대입시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국내 <사기> 전문가 한양대 이인호 교수는 <사기>를 '맥가이버 칼'에 비유하기도 했다.

여덟 번째, 미신을 철저하게 부정한다. 또한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않은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다.

아홉 번째, 실용적이면서도 윤리적인 경제관이 잘 드러나 있다 ; <화식 貨殖 열전>이 잘 말해주듯 사마천의 경제관은 한마디로 압축하면 '열심히 돈 벌어 부자되세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마천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고 권하지 않는다. 정승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고 말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 되라고 했지만 부조리하게, 불법으로 돈을 벌지 말라는 뜻이다.

열 번째, 세태에 대한 통렬한 풍자, 그것도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로이 틔울만한 풍자가 들어 있다 ; <화식 열전>에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는 법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이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지켜보면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마천은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 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고 꼬집었다.

열한 번째, 인간의 천재성과 창의력을 오롯이 맛볼 수 있다 ; <사기>는 독창적인 기전체의 효시다. 본기, 그 다음에 오는 표, 서, 세가, 열전, 이 다섯 체제는 사마천 이전에 그 누구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역사서 편집 체제이다. 사마천의 천재성과 창의력이 번뜩이는 체제가 아닐 수 없다.

열두 번째, <사기>를 읽지 않으면 중국을 알 수 없다 ; 그런 점에서 <사기>는 학문적 차원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입국 입문서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 분쟁의 근원과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사기>다.

열세 번째, <사기>가 없었다면 중국의 학술사와 중국 역사에 큰 공백이 생길 뻔했다 ; 잘 알려진 대로 진시황은 분서갱유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법가와 농가 외의 책은 불태워졌고 유학자들은 생매장되었다. 고대사 최대의 사상 탄압이었다. 하지만 <사기>가 쓰인 덕분에 유실되고 소실되었던 수많은 기록과 사상에 대한 실마리가 보존되었다. 미싱링크 missing link, 즉 잃어버린 고대사의 고리를 찾아준 게 바로 사마천의 <사기>다.

마지막으로 <사기>에는 '인간 사마천'이 있다 ; 발분의 역사가 사마천의 기구한 삶과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접하는 것도 <사기>를 읽는 것 못지않게 깊은 감동을 준다(김영수,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 탐구, 알마, 2008, pp.10-13 / 김영수, 사마천과의 대화, 새녘출판사, 2013, pp.492-497).

 

3. 사마천의 선택과 집중

 

   한나라의 라이벌인 흉노 정벌에 나섰던 이릉 장군의 결사대가 중과부적으로 흉노에 패하게 되고 포로로 잡힌 이릉 장군도 항복하게 되는 사건이 기원전 99년, 사마천의 나이 47세 때 일어난다. 한나라 조정 대신들은 매국노 이릉을 성토하였지만, 사마천은 이릉이 중과부적으로 어쩔 수 없이 거짓 항복한 것이며 훌륭한 장수라고 변호(이를 '이릉(李陵)변호사건' 또는 '이릉의 화'라고 부름)하게 되는데, 이 발언이 결국 한무제의 분노를 사게 되고 그 무서운 괘씸죄에 걸려 '황제를 무고한 죄'로 옥에 갇히게 되고 급기야 사형을 선고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나라 법에 따르면,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목숨 값으로 50만 전을 내는 속전(贖錢)이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남성의 상징인 성기를 절단하는 벌인 궁형(宮刑 ; 중국의 경우에는 생식기를 고환까지 단칼에 잘라내고 요도에 큰 거위 털을 박아 궁형을 받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난방인 잠실蠶室로 내쳤다. 거위 털을 박아넣은 데서 오줌이 나오지 않으면 요독증에 걸려 죽게 되고, 궁형을 당하고 나면 몸이 몹시 차가워지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이었다.

사마천은 기원전 97년, 그의 나이 49세에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간곡한 유언이자 자신의 필생의 사업인 <사기> 저술을 위해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형벌인 궁형을 자청한다. 이 때 사마천은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모진 치욕을 당하기로는 궁형보다 더한 것이 없소이다..... 내가 화를 누르고 울분을 삼키며 옥에 갇힌 까닭은 차마 다하지 못한 말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였소."

 

  6세부터 시작된 모차르트의 연주여행이 온 유럽지역의 음악을 섭렵함으로써 통섭적 음악 재능을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듯이, 아버지 사마담의 권유로 시작한 사마천의 20대 천하 여행은 <사기> 저술의 밑거름(현장주의)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사마천이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데도 크나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전역을 돌아보는 대장정이라는 현장체험학습을 발판으로 궁형의 치욕으로 이미 죽은 육신이지만 <사기> 완성이라는 대업에 56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온 정열과 열정을 불사른다.

 

  "사람의 죽음 가운데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구우일모九牛一毛) 것 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무거운 죽음도 있다네."  -사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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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14년의 기나긴 겨울밤을 <김원중 옮김의 사기>와 同行하면서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