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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설화(錦載屑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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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단상

늘 살아있는 아내

산수호학(山叟好學) 2009. 2. 3. 19:01


늘 살아있는 아내

이 이야기는 대학 3학년 때 독문과의 여자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여성잡지에 실린 내용인 것으로 기억한다.

A는 결혼한 지 15년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무료하고 단조로운 반복적인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애들 뒷바라지하고…
남편은 아침에 출근해서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오고…

A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 없이 그저 남편과 애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15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전에 안방에서 남편과 TV를 시청하고 있을 때 낯선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초인종 소리에 A는 밖으로 나갔다. 대문 앞에 중년의 남자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저 남자는?
바로 대학시절 남자친구였던 것이다.

A는 너무 놀라 문도 열어주지 못한 채 부엌으로 달려갔다.
안방에서 TV를 보던 남편이 한참 후에 나와보니 대문 앞에 자신과 동년배쯤 보이는 남자만 서 있고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 낯선 손님이 남편에게 정중히 자신을 소개하자 남편은 그 중년남자를 거실로 모셨다. 남편은 A에게 커피를 시켰다.

A는 너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커피에 설탕대신 소금을 놓고 만 것이다.
커피를 마신 후 그 중년 남자는 자신이 불쑥 찾아온 용건을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는 15년 전 A와 대학시절 나눈 대화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주제와 화제를 놓고 대학 4년 동안 무수한 대화를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그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정신과 영혼이 맑아지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A는 대화능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저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A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남편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그 대화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저도 직장과 가정이 있는 몸이지만 이 부탁을 하기 위해 이렇게 물어 물어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A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혼미해 왔다. 하지만, 남편은 의외로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를 허락한 것이다.

남편은 그 낯선 중년 남자를 통해서 A와 결혼해서 살면서 15년 동안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뛰어난 장점을 알게 된 것이었다. 부끄럽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 사람이 돌아간 후 A의 남편은 전혀 딴 사람으로 변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당도 쓸고 화분에 물도 주고, A와 커피 한 잔 하는 시간도 마련해주었다. 저녁에는 일찍 퇴근해서 아내의 설거지를 도와주고 아내의 이야기를 2시간 정도 경청도 해주었다.
지금 A는 행복하다고 한다. 그때 이후 A는 늘 살아있는 아내로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성경에 “남자는 부모를 떠나 한 여자를 만나 한 몸을 이루니라.”는 말씀이 있다. 
하느님은 이렇게 정확히 결혼에 관해서 명쾌하게 정의를 내려셨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부부간의 사랑 또한 그러하여야겠다. 기분에 따라 혹은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아내의 힘든 일을 도와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그러하듯이 짊을 나누고 다정한 친구처럼 연인처럼 어깨동무하고 희로애락을 같이 해야 하겠다.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작은 배려와 공경과 존경이 있는 그 마음자리에 행복의 파랑새는 둥지를 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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