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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호학

솔라리스

산수호학(山叟好學) 2013. 9. 24. 16:14

 

 

 

 

                                         "내게 중요한 것은 우주에서 지구를 보는 관점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 영화 소개

 

  솔라리스(Solaris, 1972)는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일곱 편의 영화 중 세 번째 작품으로서, 타르코프스키가 평생을 두고 집요하게 추구하던 인간의 내면, 즉 인간의 양심에 대한 그의 심각한 통찰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솔라리스>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인간의 내면의 문제와 구원의 문제를 천착했던 타르코프스키다운 영화가 되었고, 단순한 공상과학 영화에서 순수 예술영화로 탈바꿈된 것이다

(김용규,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이론과 실천, 2004, p.121).

폴란드의 유명한 공상과학 소설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Stanislaw Lem)의 동명의 작품(1961) <솔라리스>는 타르코프스키의 유일한 공상과학(scienct-fiction)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실상 SF 영화가 전혀 아니다. 이에 대해서 타르코프스키 자신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잠입자>와 <솔라리스>에서 내게 중요했던 것은 결단코 공상과학 영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라리스>에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관객을 오도하는 공상과학 영화적 속성들이 유감스럽게도 많이 들어 있었다. 원작자인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에 나오는 우주선들과 우주정거장들은 확실히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오늘날 생각해보면, 만일 이 우주선과 우주정거장 같은 공상과학 영화적 요소를 모조리 포기했더라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훨씬 더 분명해졌을 것이 틀림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A. Tarkowskij, Die Versiegelte Zeit, 김창우 역, 봉인된 시간-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분도출판사, 1997, p.253. 김용규의 위 책에서 재인용)

 

타르코프스키의 위의 말은 우리가 영화 <솔라리스>를 볼 때,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무엇에 그리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하는가를 지시한다고 김용규는 말하고 있다(위의 책,  p.118).

 

*** 수상

 1) 1972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2) '기독교국제협회상'

 3) 1972년 런던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4) 스트래프포드 국제영화제 '명예 디플로마상

 

*** 상영시간 : 167분

 

2, 영화 줄거리

 

  <솔라리스>는 심리학자 크리스 켈빈의 집으로 은하계 저편에 있는 혹성 솔라리스에 있는 우주정거장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전달되면서 시작된다. '이상한 일'이란 우주정거장에서 솔라리스의 바다에 방사선을 투사한 이래로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인간의 정신 안에 있는 기억이나 상상 곧 정신적인 것들이 물질화되어 우주정거장 안에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한 현상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솔라리스를 연구하기 위해 나간 탐사 팀이 돌아오지 않자(팀장 페히너 실종됨) 그들을 구조하러 나갔던 헬기 조종사 헨리 버튼에 의해서였다.

그는 솔라리스 바다에서 생긴 거품 같은 물질이 변화되어 만들어진 어떤 거대하고 낯선 소년의 모습을 보았다고 솔라리스 연구본부의 조사위원회에 자기의 탐사 체험을 보고했지만, 조사위원회는 그것을 버튼의 환각에 의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버튼은 지구로 돌아온 후 그 아이가 페히너의 아들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솔라리스에서 본 그 소년은 페히너가 가족을 버렸을 때의 아기 모습을 한 것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Chris)는 솔라리스의 우주정거장으로 파견된다. 우주정거장에는 우주생물학자 사르토리우스(Sartorius), 인공두뇌학자 스나우트(Snaut) 그리고 크리스의 친구인 생리학자 기바리안(Gibarian), 세 명만이 머물고 있었는데, 기바리안은  자신에게 나타난 젊은 여성을 견디다 못해 크리스 켈빈이 도착하기 직전에 자기 고백을 담은 테이프를 남기고 자살하고 만다.

우주 정거장에 남은 두 명, 즉 사르토리우스와 스나우트에게도 먼 기억 속의 사람이 옆에 실제로 나타나는 곤란한 일을 겪는다. 이들은 솔라리스 정거장에 갑자기 나타난 기억 속의 사람을 "손님"이라고 부른다. <솔라리스>에서의 괴물, 이상한 종자, 손님은 인간들의 양심을 의미한다.

 

  " 우주정거장 사람들이 '손님'이라고 부르는 이 실체는 원자로 구성된 인체와는 달리 중성미자로 구성되어 있어 철판으로 된 문을 찢고 나갈 수도 있고 얼마든지 다시 복제되기도 한다. 때문에 죽어도 부활하는 존재라고 스나우트와 사르토리우스는 설명한다. 그러나 사실인즉 그것은 자살한 기바리안이 죽기 전에 크리스에게 남긴 비디오테이프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양심(良心)이었다"(김용규, 위의 책, p.121).

 

크리스 켈빈도 솔라리스에 도착해서 첫 밤을 지내는 동안 아주 이상한 경험을 한다. 이미 10년 전에 자기 팔에 스스로 독극물을 주사해서 자살한 아내 하리(Hari)가 옆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아내로 나타난 손님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하여 우주선에 태워서 우주 공간으로 날려 버린다. 그러나 다음날 죽은 아내 하리는 다시 나타난다. 10년 전 자살에 사용한 독극물 주사 자국이 남아 있는 팔을 그대로 지닌 모습으로 말이다.

다른 두 대원들(스나우트와 사르토리우스)이 손님(양심, 아픈 기억)을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손님을 숨기고, 없애고, 못본 척함으로써 끊임없이 기억을 지우고 양심의 소리를 제거하려고 노력한 반면, 크리스 켈빈은 손님으로 등장한 아내 하리를 감추거나 얼버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동고동락하는 태도를 갖는다.

결국 크리스 켈빈은 자살한 아내 하리라는 아픈 기억(켈빈은 아내, 하리와 다툰 후 집을 나가지만 냉장고에 독극물이 있음을 기억하고 3일 후 다시 집에 돌아왔으나 아내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과 양심의 속삭임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그것과 궁극적인 화해를 꾀함으로써 양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크리스가 자신의 아내로 인정한 하리는 점점 자기의 도펠갱어(Doppelganger)인 진짜 하리를 알아가면서 혼란스러워하고 켈빈에게 질문을 던지며 괴롭혀도 그는 하리를 받아들이고 아내로서 사랑한다. 하지만, 하리는 자신이 켈빈에게 고통일 수 있음을 알고 스나우트와 사르토리우스에게 자기를 파괴해 달라고 부탁해서 스스로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솔라리스에는 평온이 찾아온다. 평안은 이렇게 받아들임과 사랑 후에, 그리고 자기가 켈빈의 진짜 아내가 될 수 없고 큰 짐이 된다는 것을 깨닫은 하리의 완전한 자기 희생으로부터 온 것이다.

아내 하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크리스 켈빈은 그후 하리와 다투고 헤어지는 원인이기도 했던 자신의 어머니와도 꿈속에서 조우하고 화해하게 된다. 크리스가 꿈에서 깨어보니 하리는 사라져버리고 스나우트가 그녀가 남긴 편지를 전해준다. 이어 크리스와 스나우트는 대화를 나누는데, 그 내용은 사람이 행복할 때에는 삶의 의미와 영원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마지막에 가서야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 마지막이 언제일지 모르니까 항상 삶의 의미와 영원과 같은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인간적 진리인 행복, 죽음, 사랑 등을 위해서는 과학적 진리가 아니라 신비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인간적 진리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안다는 것이며 그것이 오히려 인간을 영원불멸하게 한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대화를 마치고 스나우트는 크리스에게 지구로 돌아갈 때가 온 것을 알린다.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크리스의 집 앞이다. 물풀들이 춤추는 호수를 지나서, 집에 도착한 크리스는 창문 너머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밖으로 걸어 나온 아버지 앞에서 크리스는 하리에게 그랬듯이 무릎을 꿇고 감싸안는다. 이제 그 누구와도 화해할 수 있게 된 그가 그의 아버지와 화해하는 것이다(김용규의 위의 책, p.155/ 김성환외 10명 공저, 영화로 생각하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3, pp.181-184).

 

3. 영화 읽기 - 철학 보기

 

 1) 김용규의 영화 읽기 - 철학 보기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 김용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하이데거의 '양심'으로 <솔라리스>를 해석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양심을, 불안 속에서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자신의 본래적 자기에로 돌아가라고 '탓하는 부름'이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름의 소리는 오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통일체로 존재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안에서만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솔라리스>를 해석하면서 인간에게 시간이 무엇이고, 양심이 무엇인지를 본다. 나아가 스스로 이러한 양심의 부름을 듣길 원한다.

 

크리스 켈빈의 원래 성격은 무정한 사람, 그의 아버지가 표현하였듯이 '경리직원'처럼 사무적인 인간, 차갑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고,  가슴 속엔 아내의 죽음이 아프게 자리잡고 있던 사람이었다. 크리스는 과거와의 화해, 인간성과 삶의 의미의 회복, 구원을 우주정거장에 와서, 그리고 하리를 다시 만나고서야 깨닫게 된다. 물론 그도 처음 하리가 나타났을 때는 그녀를 속여 우주선에 태운 다음 가차 없이 우주 공간으로 날려버린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죄의식만 더 깊어질 뿐 자신의 과거에 대한 죄의식이자 양심인 하리를 떨쳐버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자 크리스는 곧 마음을 바꿔, 다시 나타나 그에게 고통을 더 하는 하리를 통해 자신의 죄의식을 치유하고 점차 인간성을 회복해가는데, 그 과정을 타르코프스키는 점차적으로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하며 진행시킨다.

 크리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하리는 그가 잠시만 방을 비워도 다시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고통하고 발작한다. 온몸에 상처를 내며 철문을 찢고 따라 나오는가 하면, 어디든지 따라다니고,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그것도 부족해 나중에는 액체산소를 마시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이런 하리를 크리스는 예전에 그가 아내 하리에게 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따뜻하게 배려하고,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이것이 크리스가 하는 '자기 과거와의 화해'이다. 크리스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 내면의 죄의식을 치유하고 인간성을 회복해간다 즉, 사랑이 그의 현재를 구속하는 과거 곧 '시간 이하'의 삶으로부터 그를 구원하는 것이다.

크리스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과학적 진리가 아니라 오히려 신비이고 사랑이며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김용규의 위의 책, pp.117-156).

 

 2) 나리만 스카코브의 영화 읽기 - 철학 보기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저자, 나리만 스카코브(Nariman Skakov)가 말하길,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이반의 어린시절), 중세의 서사적인 전설(안드레이 루블료프), 무한한 미래의 환상 소설(솔라리스)이 모두 동일한 주제를 다룬다. 주인공이 형이상학적인 위기를 겪으며 시간과 공간의 미로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다.

<이반의 어린 시절>과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 각각 꿈과 환영의 모티브를 통해 표현된 현실과 상상의 상호 작용은 영화 <솔라리스>에 와서 가장 극명하게 실현된다.

 두 영역의 충돌은 우리가 사는 지구의 현실적이고 고정된 공간과 거대한 바다 행성 솔라리스의 환각적이고 유동적인 표면이란 이분법을 통해 구현된다. 솔라리스는 표준에서 벗어난 일탈과 변동의 근원으로, 외부적으로 명확한 시간적, 공간적 안정성이 없다. 이 행성은 우주 비행사의 억압된 기억을 바탕으로 인간을 복제하는 능력이 있어, 과거 사건과 현상을 되비추는 그러한 '상(像)'들은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한다. 액체로 이루어진 솔라리스 바다(Ocean Solaris)는 실제의 지구인과 똑같은 형태로 행성의 주민을 빚어낸다. 그러나 그렇게 주조된 유령 중 하나인 하리(Hari)가 추억, 즉 과거 시간을 기억하는 인간의 능력을 되찾으면서 주조라는 공간적 개념이 점차 시간적 전치로 발전한다. 이와 더불어 영화의 구성도 점점 해체되어, 관객은 더 이상 현실과 단순한 환각을, 또한 현실의 실체와 그 '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외계 행성의 궤도를 회전하는 원형 우주 정거장은 꿈과 환영의 장소로 등장하여, 기존의 주관적인 환영뿐만 아니라 환상적인 심상도 이곳의 복도와 방에서 형체를 얻게 된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t de Cervantes)의 고전 돈키호테(Don Quixote)라는 인물의 '불건전한 ' 상상력과 17세기 초 스페인 현실 간의 갈등이 세르반테스가 명시적으로 내세우는 첫 번째 주제로서, 이는 우주 비행사들이 솔라리스에서 직면하는 딜레마, 즉 유령이라는 현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는 서로 비교해 볼 만한 현실과 상상 간의 경계의 소멸이 일어난다. 현실의 실체와 상상 속의 실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는 영화 <솔라리스>와 <돈키호테>의 두 여성 인물, 즉 하리와 둘시네아(Dulcinea)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두 여인은 존재론적으로 기묘한 위상을 지닌다. 이들의 존재가 전적으로 남자 파트너들의  정신 상태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리만큼이나 둘시네아도 남자들의 꿈같은 주관주의가 그 존재의 본질이다.

모험을 찾아다니는 돈키호테는 상상을 통해 현실이 다소 앞뒤가 맞지 않게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이것이 솔라리스의 과학자들이 처한 상황이고, 단지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상상보다는 그들의 양심이 주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뿐이다.

한편 하리로 보자면, 그녀는 솔라리스 바다에서 크리스의 현실로 보낸 유령이고, 크리스의 죄책감의 산물이며, 불안정한 중성미자의 합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리만 스카코브는 영화 결말부에서 크리스의 '두 번째' 귀환을 렘브란트(Rembrandt)의 <탕자의 귀환 Return of the Prodigal Son>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본다.  크리스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록 환각적-상상적 방식이기는 하지만, 마침내 아버지와 고향 행성 전체와 재회한다(나리만 스카코브의 위의 책, pp.117-153).

 

3) 영화로 생각하기, 생각하며 영화보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영화로 생각하기>의 공저자들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영화를 보고 생각한다(김성환외, 영화로 생각하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3, pp.184-190).

 

 (1) 시간과 기억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느린 것이 특색인데, <솔라리스>도 전체적으로 느리지만, 처음과 마지막은 특히 더 느리게 전개된다.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에서 시간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시간을 느리거나 '봉인'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시간의 '봉인'은 기억의 현재화를 낳는다.  솔라리스에서 벌어지는 일은 기억이 현재화되는 것이다. 시간의 '봉인'(정지), 기억의 현재화란 사건들, 기억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멀어지는 것,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기억은 기억된 것 그대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 것이다.

 

 (2) 무의식, 기억

 

  솔라리스의 과학자들(크리스, 사르토리우스, 스나우트)에게 나타나는 '손님'은 아프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의 현재화이다. 크리스에게 아내의 출현은 이러한 기억과의 대면이다. 하리의 등장은 아픈 기억이 현재화되어 크리스의 양심과 정면대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는 양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 화해를 꾀하고 양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제거'를 완수한다.

 다소 인간적인 스나우트에게도 아픈 기억이 현실로 나타나(크리스가 우주정거장에 도착해서 그를 방문했을 때 스나우트는 방에서 아이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축복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사르토리우스에게 나타난 왜소증 아이는 그의 양심을 찌르는 아픈 기억이었지만, 그는 양심의 소리, 기억을 철저하게 감추고 제거하려 한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을 부수고 기억을 없애려 하는 것은 과거를 없애고 부정하려는 것으로 이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태도이다. 현대인은 과거를 돌아보려 하지 않고, 미래에 관심을 둔다. 과학 기술의 발달, 진보, 경제 성장이 현대인의 주된 관심거리이다.

그러나 <솔라리스>는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실은 이 미래로만 눈을 돌리는 우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타르코프스키는 사후에 출판된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가 <솔라리스>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를 바라보는 방식을 내팽개치고 과거를 향해 보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일종의 안개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인간 속에 있는 하느님의 존재에 관한 것이며 우리가 거짓 지식을 소유한 결과로 빚어진 영성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나는 미래가 두렵다. "

 

타르코프스키는 인간의 양심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한 사람이다. 그는 양심을 생물학적인 것을 뛰어넘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위로부터 온 것, 영성과 관계된 것으로 생각한다.

<솔라리스>에서 세 사람(크리스, 스나우트, 사르토리우스) 앞에 선 하리는 그러한 '보편적' 양심일 수 있다.

 

 (3) 과학과 진리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무조건적인 과학의 발달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솔라리스>의 등장 인물 중 한 사람인 우주생물학자인 사르토리우스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사르토리우스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추상화된 현대인, 지식을 진실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모든 것을 연구와 분석의 대상으로 보려는 현대 과학자의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사르토리우스는 인간의 내면, 자신의 내면과 대면할 때는 매우 서투르다. 그는 지식 추구 앞에서는 솔라리스를 파괴해도, 손님을 물체로 취급해도 상관 없고, 양심의 소리에 당황하고 감추고 없애려고만 한다.

타르코프스키는 바로 이러한 성향을 보이는 사르토리우스를 통해서 무조건적인 과학 기술 진보를 추구하는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인간 내면의 소리나 영성(靈性, spirituality)과의 대면에 서투른 현대인에 대한 우려를 표출한다.

지식이란 '지식을 위한 지식'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지식을 추구하는 것만이 인간의 임무라고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에게 타르코프스키는 지식은 도덕의 바탕 위에 서야 하고, 인간 자신의 고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4) 솔라리스와 가이아

 

 가이아((Gaia)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으로서, 지구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지구가 자기조절하는 유기체라는 '가이아 가설'을 내놓은 이래 지구를 종졸 가이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러브록이 주장한 가이아 이론이란 지구를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어리로 생명체를 지탱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로 보는 시각이다.

지구를 생명체, 유기체로 보는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에서 보면, 행성 전체로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하는 <솔라리스>도 가이아와 유사한 것으로 본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과거, 기억, 양심과 화해한 크리스의 뇌파를 받고 더 이상 손님을 보내지 않는 솔라리스는 하나의 유기체를 넘어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존재로도 본다.

 

 (5) 사랑과 평안

 

 크리스에게 하리는 그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죽은 아내에 대한 죄의식이 불러낸 양심의 고통이고 아픈 기억이었는데, 그러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함으로서 진정한 화해(和解)를 통한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나아가 영적으로 고양된다.

크리스가 얻은 평안은 지구로 귀환하면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완성된다.

사랑, 용서, 희생, 양심, 희망, 믿음, 신념, 평안, 구원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 나는 사랑만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랑이 없이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A. 타르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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