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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의 치양지론 본문

산수호학

양명학의 치양지론

산수호학(山叟好學) 2013. 10. 12. 22:48

 

 

 

 

 

 

 

 

1. 왕양명의 생애와 철학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 왕양명(王陽明, 1472 - 1528)은 중국 명나라 중기 때의 철학자로 절강성 소흥 출생으로 출생시 이름은 운(雲)이었으나 5살 때 '수인(守仁)'으로 개명하였고, 양명(陽明)은 호이다.

왕양명은 삶과 철학이 분리되지 않았던 철학자이다. 이는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 혹은 파란만장한 생애를 사는 과정에서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겨오면서 깨달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1) 용장에서 깨달은 철학적 명제 ; 心卽理

 

 왕양명은 28세 때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관료생활이라는 탄탄대로를 걷던 도중 30세 때 평생에 걸쳐 그를 괴롭혔던 심한 폐질환에 걸리게 되고, 37세 때는 명나라 11대 황제 무종 시대에 권세가이던 환관 유근(劉瑾)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지만,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유근의 농간으로 황제를 능멸했다는 명목) 왕과 조정 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볼기를 맞는 '장형'을 당한다. 이 장형으로 인해서 넙다리뼈가 부러지고 오랜기간의 투옥을 거쳐 북경에서 가는데 1년이니 소요되는 중국 남서쪽 산골 마을인 용장(龍場)으로 좌천되어 파발마 관리의 임무가 떨어진다. 북경에서 유배지 용장으로 가는 1년여 동안 유근이 보낸 킬러들에 의해서 수없는 위기와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긴다. 이렇게 구사일생으로 간 용장은 숙소도 식량도 없을 뿐더러 가시나무숲, 풍토병, 해충과 독충이 우글거리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소수민족이 사는 불모지였다. '세상 끝으로 왔다'는 생각과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으로 인한 심적 절망감, 고독, 고통, 외로움과 아울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 때 왕양명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 위대한 성인이라면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극복했을까?"

 

위와 같은 물음에 대해서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등 끊임없이 성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답을 구한다. 그러던 어느 한 밤 중에 번개처럼 스쳐가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 성인(聖人)의 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성인은 내 안에 있다) ! "

 

용장에서의 깨달음, 즉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자각은 왕양명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제 용장은 왕양명에게 낯선 세계, 미지의 세계가 아닌 새로운 세계로 다가오게 된다.

용장에서 깨달은 철학적 명제는 심즉리(心卽理), 내 마음이 곧 이치이다. 理致는 영어의 principle 같은 것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혹은 그렇게 해야 하는 원리'를 말한다.

 

몇년 후 환관 유근의 악행과 부정축재가 들통나 사형되고, 유근으로 인해 좌천된 사람들은 복직하게 되는데, 왕양명도 이 때 중앙정계로 복직되고 이후 독창적인 철학 체계가 수립되면서 "양명학"이 태동된다.

 

48세 되던 해에 명나라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반란이 될뻔한 '황족 주신호의 10만 반란군'을 그 근처에 있던 왕양명이 의병을 모아 황제의 중앙군이 내려오기도 전에 사전 진압해 버렸지만, 중앙군 장군들의 미움, 시기, 질투, 의심을 받게 되어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모함과 중상모략을 받게 된다. 그 후 왕양명을 시기 질투하던 조정 관료들의 사주로 지방 반란 진압 명령이 죽을 때까지 내려진다.

왕양명의 시대에는 황족반란, 농민반란, 소수민족반란이 끊임없이 발발하게 되는데, 왕양명은 반란진압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의 반란세력 진압 전략은 첫째, 진압 전에 대표자 면담을 통해서 공감의 정치를 펼치고 둘째, 문제해결을 하고 셋째, 협상 결렬시는 반란군에게 진압할 수 밖에 없다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후 진압하며 넷째, 사후 수습을 철저히 하고 다섯째, 반란 지역에 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왕양명은 반란세력을 진압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진다.

" 백성은 왜 이렇게 궁핍하게 살까?"

"유가, 주자학을 배운 사대부(士大夫)들이 이런 정치, 사회 현실을 방치하는 것일까?"

"알면서도 왜 모른체하고 무시할까?"

 

이런 의문 가운데 왕양명은 개개인들의 자각이 없으면, 즉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해서 모든 개개인들이 자기가 사는 공동체의 주인이 되는 교육을 시키게 된다.

 

 2) 모여라 공부하자!

 

 이 때부터 왕양명의 주요 소임은 같이 말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강학(講學)이 된다. 왕양명은 강학을 통해서 개개인들이 공동체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한다. "모여라, 공부하자"는 왕양명의 평생 모토가 되었다.

 

 3) 지행합일론

 

 격물(格物)에 대한 해석을 두고 주희와 왕양명이 갈라지게 된다. 주희는 격물을 즉물, 궁리, 지극과 같이 3단계로 나누었다. 이치를 탐구하는 '궁리'가 주희의 핵심 개념이었는데, 궁리의 방법은 구체적이면서 미세해야 하고, 강론 및 독서와 경전을 통한 문자 속에서 구하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겼다.

반면 왕양명은 격물의 격을 '이르다, 다가가다'로 풀이한 주희와는 달리 '바로 잡다'로 풀이하고 물(物)은 마음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왕양명은 윤리적 주체인 내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격물이라 하였다.

 

왕양명의 지행합일론(知行合一論)은 38세 무렵에 만들어진 이론으로서 마음의 움직임이 곧 내 속에 들어 있는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사물에 들어 있는 이치를 먼저 깨달을 것을 강조함으로써  먼저 알고 나중에 행한다는 선지후행설(先知後行說) 혹은 앎과 행동은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행호발설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먼저 알아야 행할 수 있다는 것과 앎과 행동은 서로 성격이 다른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한 주희와는 달리 왕양명은 앎과 행동은 분리될 수 없는 본모습이고, 행위가 따르지 않은 앎은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지행은 합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앎은 행동의 시작이고, 행동은 앎의 완성이다.

 

 4) 왕양명 철학의 핵심, 치양지

 

 양지(良知)는 왕양명 철학의 핵심이자 독창적인 개념이다. 왕양명은 '마음이 곧 이치'라고 하면서 그 마음의 본체를 양지라고 하였고, 마음과 이치가 하나로 합일된 경지로서 인간 자신이 타고난 도덕적 자각을 완성한 상태를 치양지(致良知)라고 하였다.

 

  (1) 양지란 무엇인가?

 

  양지란, 첫째, 선량한 앎, 내재된 앎이고, 둘째, 도덕적 원리의 근원이 되는 인간 마음의 작용이며, 셋째, 자기 마음과 자기 밖에 있는 세상을 맑게 밝게 깨닫고 있는 것이고, 넷째, 광명(光明), 즉 밝은 빛이며, 다섯째,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고, 여섯째, 仁(사랑), 義(정의), 禮(행동규범), 智(도덕적 앎)가 스스로 발현되는 것이며, 일곱째, 생명의 힘(氣)을 뜻한다.

 

왕양명은 56세에 반란 진압 후 배를 타고 돌아오던 도중에 선상에서 죽는 순간까지도 제자에게 "내 마음이 光明인데, 무슨 말을 덧붙이랴!"는 유언을 남겨, 마지막까지 양지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과 자세를 견지하였다.

 

  (2) 양지의 특성

 

 가. 양지는 진성측달의 마음이다 ; 진성측달(眞誠惻달)이란 고통과 슬픔에 빠진 대상에 대해서 거짓이나 꾸밈없이 불쌍해 하고 슬프하는 마음의 진실한 작용이다. 진성측달이란 양지의 작용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불쌍함과 슬픔, 힘들어함과 곤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꾸밈이나 거짓없이 그대로 움직이고 자연스럽게 작용하여 그 결과가 仁과 같은 원리로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孝, 弟, 忠, 信 등은 동일한 양지의 작용이고 진성측달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나. 시비지심으로서의 양지 ; 시비지심(是非之心)이란 본능적으로 뭐가 옳고 그른지를 아는 마음이다. 시비지심은 내 외부의 사건들, 대상들을 두고 내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내 자신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작용을 말한다. 내 의식 속에서 어떤 생각, 판단, 욕구가 일어날 때 그게 옳은지, 그른지를 곧바로 자각하는 능력이 시비지심으로서의 양지이다. 다시 말해서, 양지는 매순간 내 마음이 일어날 때 내 마음이 뭔가에 가려지고 휘둘려져서 어떤 생각이나 욕구를 잘못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내 마음의 순수한 마음이 정직하게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지 아닌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다. 감응지기로서의 양지 ; 감응지기(感應之幾)는 '감응의 기틀', 자극과 반응의 관계로, 천지만물과 내 마음이 하나이며, 마음을 가진 모든 존재는 세상의 중심이고, 내 마음이 세상을 비추는 빛란 의미이다. 정명도(程明道)가 중풍의 원인을 '不仁'임을 밝힌 책을 보고, 왕양명은 나와 타인 사이에 생명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타인이 고통받으면 나에게 고통이 전달되는 것으로 자각했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내가 무감각, 무감응하면 '윤리적 중풍'이 온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의식활동에 있어서 사사로운 욕구, 자기 이익, 자기 관심이 높아지고 지배를 받게 되면 마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개방적인 감응의 능력이 은폐되거나 억눌릴 수 있다. 따라서 매 순간 양지의 활동에 따라서 내 의식활동이 사사로운 욕구나 개인적 관심에 지배받고 있지 않은지 계속래서 점검하고 공부해 나가야 한다고 왕양명은 주장하였다.

 

 라. 허령명각으로서의 양지 ; 허령명각(虛靈明覺)이란 우리 마음이 밝게 깨어 있으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널리 인지하고 그것에 감응하는 작용이다. 왕양명에 있어 마음(양지)이란 본래 나라는 개인에 속한 내밀하고 폐쇄적이며 심리적 공간이 아닌 세계를 향해서 열려 있으면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세계 속에서 활동하는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는 힘이다.

 

 마. 氣로서의 양지 ; 생명의 힘이 양지이고, 양지가 곧 氣이다. 양지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운동하는 氣며, 理는 기의 운동이 드러내는 마음의 결이다. 마음의 양지(기)는 理의 근원이 된다. 왕양명은 양지의 개념을 통해서 주희에 의해 이원화되어 있던 氣와 理의 관계를 통합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3) 치양지는 무엇인가?

 

 양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양지를 실현하는 치양지(致良知)는 사대부 지식인과 같은 어떤 특수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장삼이사 누구든지 다 접근할 수 있는 공부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떤 상황이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이든간에 자기의 마음을 돌아다 보는 그런 공부를 누구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양지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부이고, 길거리에 가득차 있는 모든 사람이 주희식 격물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니 안에 聖人이 있다"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왕양명 철학의 핵심, 치양지론을 듣고 읽으면서, 묘법연화경 제19품에 보이는 "나는 당신을 공경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미래에 부처가 될 씨앗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함과 아울러 절의 보시를 행한 상불경보살이 떠올랐다.

왕양명은 누구에게나 절의 공경을 실천하는 대신에 "모여라 공부하자"는 삶의 모토를 죽은 순간까지 붙잡고 같이 말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강학(講學)을 실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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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김교빈외 5인, 동양철학의 산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2, pp.94-102.

          2.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3학년 2학기, 동양철학의 산책, 출석수업 및 자료(김경희 교수)

          3.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3학년 2학기, 동양철학의 산책, 방송강의(김경희 교수)

 

 

*** 위의 내용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3학년 2학기, <동양철학의 산책> 중 왕양명 철학에 대한 출석수업을 듣고 출석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한 것을 요약해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