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재설화(錦載屑話)
영화 '파파로티'를 생각하다 본문
1. 영화 줄거리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파파로티는 조폭인 이장호(이제훈 역)가 지방의 한 예술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나상진(한석규 역)을 만나면서 어렸을 때부터 가슴 속에 품어왔던 성악가의 꿈을 이루어가는 영화이다.
2. 파파로티를 생각하다
나는 이 영화를 만남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생각해 보았다.
독일의 의사이자 작가였던 한스 카로사는 "인생은 만남이다" 라고 하였는데, 실존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인생의 만남에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겉사람과 겉사람끼리의 옅은 피상적인 만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격과 인격끼리의 깊은 실존적 만남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조폭 보스와 건달 이장호의 조우(遭遇)는 그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할머니의 사후, 주변인들의 무관심, 외로움, 허전함, 외톨이 신세를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의한 불행하고 잘못된 만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성악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해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겠다는 꿈이라는 황금 씨앗(golden seeds)을 그의 가슴에 깊이 심은 이장호에겐 조폭세계와의 만남은 오래갈 수 없는 꽃과 같은 만남, 지우개와 같은 만남일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음악교사 나상진과 조폭 이장호의 해후(邂逅)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 공자와 안연의 만남, 애니 설리번과 헬렌켈러의 만남처럼 깊고 성실한 교육적 만남으로서 칼 야스퍼스가 말한 실존적 만남이었고, 손수건 같은 좋은 만남이었다.
나상진은 성악가로서 타고난 목소리와 성량의 가치를 지닌 이장호라는 보물을 발견하고, 그를 조폭이라는 어두운 세계에서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조폭 보스를 찾아가서 '음악선생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니 손목은 드릴 수 없고 발목이라도 내 놓을테니 이장호를 그만 놓아달라' 고 사정한다. 나상진 선생의 행동은 건달 이장호를 진정한 제자로 받아들여서 사람답게 제대로 교육시키고 성악가로서의 재능과 꿈을 펼쳐주고자 하는 진정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amor omnia vincit)" 고 한 칼 힐티의 말처럼, 제자에 대한 스승의 사랑은 폭력을 이기고 외로움을 이기고 무관심을 이기고 무지를 극복할 수 있는 불씨가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 왕따, 자살이라는 문제의 원인은 교육당국과 교사 및 학생 상호 간의 유대감의 상실과경쟁의식의 과열과 아울러 무책임, 무관심, 무목표, 무대책에 있다고 본다. 근본적인 치유에 의한 참다운 회복 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채 이러한 심각한 질병이 바이러스처럼 감염되어 간다면 학교는 학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교사는 교사로서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인간 없는 학교(school is dead)" 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는 직업인이기 이전에 교육자로서의 본연의 mission, vision, action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고, 학생은 왜 학교에 가는지, 어떤 가치있는 삶을 살 것인지, 지식과 지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즐겁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에서 소크라테스가 지적한 것이 있다. 스승과 제자는 진리파지(眞理把持)라는 거룩한 목적을 향하여 가는 동행인이다. 제자는 스승이 밝혀주는 불빛의 힘을 입고 전진할 수 있으며, 스승은 그가 하다 못한 일을 제자에게 인계하여 준다. 그러므로 사제간에는 존경과 사랑이 움트는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사은(師恩)의 느낌이야말로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영화 파파로티는 스승 나상진과 제자 이장호가 존경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꿈을 펼쳐나가는 동행이인의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고 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1학년 1학기 교과목 <영화로 생각하기> 출석수업 시험용으로 적어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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