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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설화(錦載屑話)

영재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 본문

산수호학/금재서재(寶南齋)

영재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

산수호학(山叟好學) 2015. 5. 4. 10:21

 



"옷깃만 스쳐도 인연" 이란 말에서 옷깃은 옷자락이 아닌 윗옷의 목둘레 부분을 뜻한다고 한다. 그냥 서로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넘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감싸주는 수준 정도는 되어야 소중한 인연이 맺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삶에 있어 책이 바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같은 존재다.
120만권의 중고 서적들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흩어져 있는 마산 창동의 영록서점에서 히익 스쳐지나가는 눈길 속에 들어와 만난 최근의 책이 영재 유득공(1748~1807)의 <이십일도회고시>다.

이것은 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 왕조까지 조선의 강역에 존멸하였던 21개국의 왕도를 회고시로 읊은 작품이다(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역주, 이십일도회고시, 푸른역사, 2009, p.12).
영재는 사기, 한서, 삼국지, 위서, 당서 등 중국 측의 정사를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 고려사, 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문헌비고, 삼국사기 등 우리나라의 국고문헌들을 취하여 함께 인용함으로써 그 신빙성을 더 하였다.

유득공의 이 시집은 다산 정약용에게 민족 주체의식을 보여준 모범적 작품으로 인식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문인학자들(반정윤, 오숭량, 기윤, 옹방강, 완원, 유환지, 조지겸 등) 사이에서도 그 가치가 인정받을 정도였다.
따라서 <이십일도회고시>는 조선과 청나라 문인들의 교유의 물결을 이은 유금(1741~1788)의 <한객건연집>과 더불어 18세기 한중문화교류사의 관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만큼 귀중한 책이다.

2015년 3월 31일 '헌책이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영록서점'에서 만난 이후 박철상의 <서재에 살다> 여섯번째 대목 "유득공의 사서루" 를 읽으면서 또 한 번 <이십일도회고시>를 접했으니 이 어찌 그냥 스쳐지나가는 구름과 바람같은 인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