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재설화(錦載屑話)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없다 ? 본문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의 시리즈>보다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도 있었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셨다. 텔레비전은 물론 컴퓨터,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엔 마을 입구 정자나 사랑방에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구수한 이야기가 밤시간을 함께 보내고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곤 하였다. 입담 좋은 이의 이야기에 때론 감동하며, 웃고, 울고하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마을 어르신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집에 가는 것이 즐거웠고, 선생님이 전해주시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에 학교에 가는 것이 신이 났다. 즐거운 이야기, 기쁜 이야기, 감동받는 이야기에 어찌 두 귀 달린 사람으로서 듣는 일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거리가 10리, 20리 거리이다 보니 걸어면서 보는 것도 많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것도 지천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터 장날을 지나게 되는 날엔 더욱 신나고 볼 것, 들을 것이 많았다. 실컷 구경하고 마을에 도착하면 동구 밖 정자나무 밑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께서 장날에 어떤 구경을 했는지 이야기해 보라 하신다. 보고 들은 것을 어찌 신나게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들여다 보자.
집에선 할아버지, 할머니께 이야기해 달라고 조르는 손자 손녀 보기 어렵고(할아버지, 할머니곁에 아예 오려고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저녁엔 온 가족이 텔레비전에 두 눈, 두 귀를 비롯한 온 신경을 집중한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외식하는 날이면 차에 타자 마자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혹은 어머니)를 제외하곤 각자 스마트폰에 눈길을 주고, 식당에 도착해서 음식을 주문하고 나오기까지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책보는 것을 귀찮아 해 오디어북을 들어라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듣기를 더 선호한다.
학교에선 초,중,고의 두 귀 달린 학생이 수업하러 교실, 운동장에 들어오신 선생님의 말씀에 바른 태도와 배우려는 마음자세로 듣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학생들간 친구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는 온통 게임, 노래, 연예프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이야기에도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어려울 지경이다.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보기 드물고, 남의 말에 제대로 경청의 자세를 가지는 사람도 희귀하다. 저마다 제 이야기를 늘어놓곤 하지만 들어볼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텔레비전이나 시민대학 같은 곳에서 소위 유명하다는 강사들의 말을 들어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간혹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사람들이 연사로 초청되어 그들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줄 땐 진한 감동을 받고 한다.
감동의 이야기꾼이 각 가정, 학교, 직장, 사회단체에 한 두명은 있을 수 있는 사람 세상을 꿈꾸어 본다.
두 귀 달린 사람이 남의 말에 올바로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회를 희망해 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스포츠, 예술, 디자인 등에 스토리를 멋지게 입혀서 감동을 선사하는 사람과 조직을 학수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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