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 혜능대사는 남종선(南宗禪)의 창시자로서 중국 선종사에 있어 달마대사와 함께 가장 중요시되는 인물이다. 그는 638년에 신주(지금의 광동성 신흥현)에서 아버지 노씨와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 고조 때에 신주로 좌천되어 낙향한 후 천민이 되었고, 혜능이 세 살 때 돌아가셨다.
혜능은 어려서부터 땔나무를 팔아 홀어머니를 극진한 효성으로 봉양했다. 가난한 살림살이로 인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했고, 평생 까막눈으로 살았다.
혜능의 나이 24세 때,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지게 위에 한짐 가득 장작을 싣고 객점이 즐비한 저자거리로 나무를 팔러 나갔다. 운좋게 한 객점에 장작을 팔고 나서는 도중에 어느 나그네의 『금강경』독송 한 구절을 들을 수 있었다.
“머무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應無所住, 而生其心)
일자무식의 나무꾼 혜능에게 출가를 결심하게 한 금강경 제10분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귀공양이 밝은 혜능은 순간적으로 깨달은 바 있어 황매산으로 5조 홍인대사를 찾아간다. 홍인을 찾아간 혜능은 부처되는 법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홍인은 혜능에게 ‘너는 남쪽의 오랑캐로서 감히 어떻게 네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냐?’ 하면서 면박을 주자 혜능은 ‘사람이야 비록 남북이 있어 다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부처의 성품에는 남북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로 지혜롭게 대답하여 황매산에 머물게 되고, 입산 8개월 만에 홍인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법을 전수받게 된다.
홍인이 제자들에게 깨친 바를 시로 지어 보이면 제출한 시를 보고 자신의 후계자를 결정하겠다고 하자, 제자들 사이에서 수제자인 신수는 자신의 깨친 바를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스승 홍인대사에게 보여드린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맑은 거울일세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때묻지 않도록 하여야 하리” (身是菩提樹, 心如明鏡台,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신수의 시를 동자를 통해서 들은 혜능은 다음과 같은 시를 쓰게 한다.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요 거울 또한 거울이 아니라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서 티끌이 일어나랴” (菩提本無樹 明鏡亦非台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홍인은 수제자 신수(후에 북종선을 창시함) 대신 황매산 후원 방앗간에서 방아 찧는 일을 하고 있는 혜능의 손을 들어주고, 원래 이름인 혜능(惠能)에서 지혜에 능하다는 의미로 혜능(慧能)이라는 법명을 내려준다.
이렇게 해서 땔나무꾼 혜능은 6대조사가 된다.
혜능은 713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글자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높은 덕과 지혜로 법력을 펼쳤고 신회를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목적은 하나이지만 방향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천하의 이치는 하나이지만 백가지 생각이 있고,
다 같은 곳으로 돌아가지만 저마다의 길이 있다.”(주역계사전)
(天下一致而百慮, 同歸而殊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