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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설화(錦載屑話)
장무상망(長毋相忘) 본문
거칠고 간략하며 메마른 느낌인 황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에는 정희(正喜), 완당(阮堂), 추사(秋史)라는 세 가지 인장외에 '장무상망(長毋相忘)'인이라는 한장(閑章 ; 자신의 취미나 기호, 또는 좋은 시구나 경구를 새긴 인장을 말함)이 찍혀있음을 볼 수 있다.
<세한도>의 저자, 박철상은 거칠고 메마른 붓 터치 속에서 印章은 세한도의 눈이 되고, 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박철상, 세한도, 문학동네, 2010, pp.145~153), 나의 눈에 빛으로 들어온 인장이 바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을 지닌 長毋相忘印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The fact that a person is coming surely is a big deal because a life comes with it)" 라고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대정현(지금의 제주도 서귀포 지역)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던 秋史 김정희에게 청나라에서 구한 귀중하고 값비싼 책들과 그곳의 인물들의 소식과 물적 정보들을 끊임없이 제공해 준 역관 우선(藕船) 이상적(1803~1865)의 존재는 정현종의 <방문객>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싶다.
완당(추사의 또 다른 호)에게는 이재 권돈인, 황산 김유근처럼 知音者와 같은 절친들이 있었지만, 자신을 유배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유일한 희망이었던 황산은 추사가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날 운명을 달리하였으며, 조정에 남아있는 지인들도 하나 둘 관계를 멀리하고 있음을 느낀 처지에서 우선 이상적이 보인 의리와 절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는 논어 자한편의 글귀와 오버랩되어 마침내 이상적의 굳는 절개와 의리에 더하여 추사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그림인 <세한도>가 완성되었던 것이고,
'고맙네, 우선! 오래도록 자네의 의리를 잊지 않겠네. 그대 또한 언제나 나를 잊지 말게나.' 라는 의미를 담아 세한도에 붉은 인주의 빛깔이 선명한 長毋相忘印을 추사는 힘주어 찍은 것이리라.
곰곰히 생각해 본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개인형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만연하고, 하나의 주제나 사건 등에 관해서 "좋아요"를 누르면 거미줄처럼 연결된 관계망에서 누구나 보고 동감, 공감, 공유할 수 있는 현대라는 시공간 속에서 살면서, 그리고 오랜 시간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고 저마다 남은 삶의 생명줄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의 처지에 상관없이 "서로 잊지 말고 살아요!" 라고 마음과 영혼의 목소리로 전할 수 있는 진실한 이가 있을 수 있는지를.
지금부터(from now) !
손편지에, 명함에, 메세지를 보낼 때, 헤어질 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 잊지 말고 살아요!" 란 長毋相忘의 마음을 전하면서 남은 생 살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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